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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책임능력의 감정에 대한 법적 고찰;노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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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상섭

  • 202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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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책임능력의 감정에 대한 법적 고찰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노 용 우 교수

_________________________<목차>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I. 머리말                        II.  책임능력제도개관
III. 정신감정의 요부(要否)        IV. 정신감정의 채부(採否)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I. 머리말

  책임능력의 문제영역은 형사법학과 정신의학ᆞ심리학 등의 인접과학의 접점에 놓여 있다. 책임무능력과 한정책임능력의 내용구성, 정신감정, 처우론 등에서 정신의학ᆞ심리학 등의 전문가의 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임능력은 이론적인 문제보다는 실천적이고 경험적 문제가 중요시된다. 그런데 이러한 협력관계는 반드시 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대립ᆞ긴장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또한 책임능력론, 그리고 책임론의 발전을 위하여 인접과학과의 대화와 교류의 필요성을 말하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형사법과 정신의학ᆞ심리학사이의 갈등관계를 소개한 국내문헌으로는, 프란쯔 쉬트렝(김영환역), “책임능력판정에서의 심리학자와 형사법률가 - 의사소통의 차원과 권한갈등”, 한양대학교 법학논총, 제11집, 한양대학교 법학연구소, 1995; 신치재, “책임능력감정을 위한 법관과 정신의학자와의 협력”, 과학기술법연구, 제1권(창간호), 한남대학교 과학기술연구소, 1995.
 
  우리 형사법학에서는 종래 독일법의 범죄론체계의 논쟁에 영향을 받아 규범학적 도그마틱중심의 논의가 있어온 가운데 책임능력의 사실적ᆞ경험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소홀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최근 의사자유와 관련한 윤리적ᆞ형이상학적인 책임론의 논쟁방향이 예방론적 형벌목적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고 이러한 논의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또한 사회보호법, 정신보건법 등의 제정이라든가 형사정책적 관심의 증대와 함께 우리 형법학도 이론과 실천의 양면에서 과학적 사고를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임능력의 개념은 형법적 가치개념이므로 그의 유무에 대한 최후의 판정은 법관의 임무이다. 그러나 그 대상인 사람의 정신기능에 장애가 있는가, 있다면 그 장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행위에 영향을 미쳤는가의 여부를 기초로 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정신의학적 지식에 의하지 않으면 이것을 인식하는 것이 곤란하므로 재판상 또는 수사상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정신감정에 대한 지식ㆍ경험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하여 전문가의 감정에 회부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에 정신감정의 범위, 즉 감정인이 해야할 역할이라는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에 관하여 법률가측에서는 사법실무(司法實務)상의 법률가인 법관이나 검사에게 감정인 의존의 경향이 현저하고 감정결과에 맹종하는 경향이 있음과 동시에 감정인이 그 직분을 넘어서 책임능력 자체에 대하여 의견을 붙이는 경향이 강하다고 비판한다. 한편 정신과의사와 정신의학자측에서는 법률가가 정신의학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여 정신감정의 요부에 대한 판단을 적절히 내리지 못할 수도 있고 정신감정서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비판한다.
  본고에서는 정신감정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형법학과 정신의학 사이의 대화와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II. 책임능력제도개관

 1. 책임능력의 규정방법

  심신장애로 인한 책임능력을 규정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① 생물학적 방법, ② 심리학적 방법, ③ 혼합적 방법이다. ①은 행위자의 비정상적인 생물학적 상태를 기술하고 그러한 상태가 있으면 바로 책임능력을 부인하는 방법이다. 프랑스형법(1810년) 제64조  그러나 실무에서는 혼합적 방법과 다름없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정영일, “책임능력”, 고시계, 93/11, 111면 참조.

  미국의 Durham Rule, 영국의 살인죄법(1957년) 제2조(감약책임능력), 독일형법 제19조, 우리나라형법 제9조, 제11조 등이 있다. ②는 책임이란 달리 행위할 수 있었음에도 범행을 한 데 대한 비난이므로 행위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으면 책임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는 방법이다. 1869년 7월 북독일연방형법 제1차초안 제46조. 실제의 입법례에서 순수한 심리적 방법을 채용한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③은 앞의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사용하는 방법으로, 행위자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생물학적 요소로 규정하고, 이 요소가 행위자의 변별능력(지적 요소)과 의사결정능력(의적 요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심리학적 요소로서 검토한다. 미국 모범형법전, 독일형법 등 많은 나라에서 채용하고 있다. 우리 형법 제10조도 여기에 해당한다. 혼합적 방법에도 세 종류가 있는데, ① 정신장애라는 생물학적 요소와 변별능력만을 심리적 요소로 병용하는 방법으로, 영미형법의 M‘Naghten Rules, 뉴욕신형법, 일본구형법 등이 이에 속한다. ② 정신장애라는 생물학적 요소와 제어능력만을 심리적 요소로서 병용하는 방법으로, 영미형법의 저항불능의 충동테스트, Currens Rule 등이 이에 속한다. ③ 정신장애라는 생물학적 요소와 변별능력, 제어능력의 쌍방을 심리학적 요소로서 병용하는 방법으로, 미국의 모범형법전 , 독일형법, 우리나라 현행형법 등이 이에 속한다. 墨谷葵, 責任能力基準の硏究, 慶應通信, 1980, 219면 이하; 노용우, “책임능력에 관한 연구, - 형법과 정신의학-”,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89, 48면 이하; 김선수, “형사책임능력기준에 관한 비교법적 개관”, 경남법학 제5집, 경남대 법학연구소, 1989, 5~34면 참조.

 
  전통적인 혼합적 방법에 의하면 생물학적 요소와 변별능력, 제어능력의 쌍방을 심리학적 방법에 의존하게 되므로 책임능력의 판단에는 정사의 변별능력과 그에 따른 제어능력이 그 핵심이 되고 그의 전제가 되는 생물학적 요소에 관한 정신의학자의 의견은 법관의 판단을 위한 하나의 참고자료가 될 뿐이다. 그것은 생물학적 요소가 인과적ᆞ기술적이고 심리학적 요소는 규범적ᆞ가치적인 것이며,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도 법적 개념이기 때문에 정신과의사에 의한 생물학적 감정결과를 기초로 하여 법관이 심리학적 요소의 검토를 통한 가치판단에 의하여 이를 결정한다고 하는 것이 책임능력판단의 구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과의사의 책임무능력이라는 의견은 법관에 의해서 무시될 수도 있고, 정신과의사 상호간의 의견이 상충하는 경우에는 그 선택은 법관에게 일임되어 있다. 차용석, 주석형법(상), 사법행정학회, 1988, 151면 참조; 독일에서는 감정에서 전통적으로 정신의학자에 의하여 주도되어 왔으나, 최근 심리학자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책임능력은 법관의 법적ㆍ규범적 판단에 의거한다는 정설이 자칫하면 법관의 무죄방면에 대한 두려움과 사회정의의식이 법관으로 하여금 과학적 사실의 인정을 외면하게 하기 쉽다. 그러나 법관의 판단이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그 판단은 규범적ㆍ윤리적인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실판단으로서의 경험적 기준에 의하여 형벌에 의한 처우가 적절한가 여부, 즉 처우효과를 고려한 판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혼합적 방법을 취하는 경우에도 비교적 객관적 기준설정이 가능한 정신과의사의 생물학적 판단을 존중하고 또 법관도 사실판단에 관하여 인간이해를 위한 과학적 지식탐구의 방법에 의하여야 한다. 이에 관하여 독일에서는 정신의학자, 법관, 법학자 사이에 일정한 합의에 의한 실무상 유용한지침으로서 소위 관례(Konvention: 또는 협정이라고도 번역됨)라는 것이 오랜 역사에 걸쳐 구축되어 왔다. 이것은 특히 심리학적 요소에 대한 可知論과 不可知論의 논쟁 가운데에서 이 난문을 회피하고자 하는 데에서 이루어져 온 것인데 불가지론의 입장은 이 관례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 이에 대한 논쟁이 많지만 이러한 관례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 책임능력개념이 유무죄의 한계설정과 함께 책임능력자에게는 치료 내지 보안처분이 행하여진다는 현실적 효과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고, 법치국가원리와 처우론적 고려에 입각하여 규범적ㆍ정책적 판단이 내려져야 할 것이다. Goldstein은 책임능력의 기준은 기본적으로 응보, 억지, 사회복귀라는 형법의 목적과 관련하여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시사한다. Gokldstein, The Insanity Defence,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67, 11~15면 참조; 墨谷葵, 전게서, 211면.
  1871년의 독일형법 제51조(1933년 이전)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구파의 대표자인 Birkmeyer가 독일형법이 자유의사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실정법적 근거로 삼은 것이었으나, 자유의사로서의 책임능력개념은 신파의 지도자인 F.Liszt에 의하여서도 비판되고, 결국 1933년개정시에 그러한 표현은 포기되었다. 仲宗根玄吉, 精神醫學と刑事法學の交錯, 弘文堂, 1981, 63면; 노용우, 전게논문, 16면.



 2. 생물학적요소
 
  생물학적 요소에 관한 우리 형법의 입법방식은 “심신장애”라는 일반조항의 형태로 되어 있으나, 형법개정시에는 독일형법과 같이 의학적으로 기초지위진 열거방식의 입법에 대한 타당성 여부가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포괄적 일반조항이라고 하여도 해석상 자의적 판단을 규제하기 위하여는 어느 정도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형법학자들은 대체로 독일형법 제20조의분류를 기초로 하여 심신장애의 개념을 구체화하고 있다. 독일형법 제20조는 병적 정신장애(krankhafte seelische Störungen), 심한 의식장애(Bewußteinstörung), 정신박약(Schwachsinn), 또는 중한 기타의 정신변성(schwere andere seelische Abartibkeit)으로 인하여 불법을 인식하고 그 인식에 따라 생위할 수 없는 자를 책임무능력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특히 1950년대 독일형법개정작업과정에서 좁은 정신의학적 질병개념과 넓은 법률적 질병개념 사이의 논쟁의 결과이다. 노용우, 전게논문, 103면 이하 참조. 
 반면에 실무상 정신감정에서는 정신의학자들이 공식적으로 WHO의 국제질변분류(ICD-10)를 채용하고, 현실적으로는 주로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 및 통계편람(DSM-4)를 채용하고, 현실적으로는 주로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 및 통계편람(DSM-4)의 진단분류를 사용하고 있다. 바람직한 것은 정신의학자들과의 협력관계에 의하여 분류기준을 마련하는 것이겠으나, 정신의학에서 사용하는 기준과 용어를 법적 개념으로서 그대로 받아들이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형법과 정신의학이 추구하는 목적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고려하여야 한다.   
       
 3. 생물학적 요소와 심리학적 요소의 관계                           
       
  우리가 만일 책임능력의 판단을 생물학적 요소와 심리학적 요소의 양면을 보는 이른바 혼합적 방법에 의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면 법관과 감정인의 판단범위와 관할의 문제, 다시 말하면 어느 정도까지 양자의 협동작업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종래에는 생물학적 요소는 인과적ㆍ기술적 요건으로 감정인의 관할에 속하는 반면, 심리학적 요소는 규범적 요건으로 오로지 법관의 관할에 속한다는 견해가 유력하였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과거에는 정신과의사의 임무를 생물학적(기술적) 요소의 확인에 있고, 법관의 임무를 심리학적(평가적) 요소의 판단에 각각 있다는 식으로 확연하게 분할하려는 주장이 있었던 반면, 이에 대한 반박으로서 감정인은 책임능력유무의 결론까지도 감정신청서 중에 기재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 아샤펜부르크(Aschaffenburg) 등으로부터 제창된 바 있다. 그런데 이에 관하여 메츠거(Mezger)는 심리학적(평가적) 요소의 유무판단이 최종적으로 법관의 전권에 속한다고 하여 쉬나이더(K,Schneider)를 비롯하여 많은 지지를 받았고 우리나라의 판례ㆍ통설도 대체로 이 입장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메츠거 등의 견해는 기술적ㆍ경험적 영역을 전부 전문가에게 할당하고 평가적ㆍ규범적 영역을 전부 법관에게 할당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양면에 걸쳐서 양자협력(Zussammenwirken)이 필요하고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된다는 것이다.
  원래 생물학적(기술적) 요소에서는 경험의 응용, 특히 이상심리상태의 영역에 있어서의 임상적 경험의 응용, 즉 기술적 작업이 문제되며 반면 심리학적(규범적) 요소에서는 확정된 사실관계를 법적 견지에서 평가하는 것, 즉 평가적(규범적) 작업이 문제된다. 따라서 전자에서는 감정인을 확실한 우위상태에 놓고 감정을 명하는 것이 허용되며, 이 때 감정인이 행하여야 할 직무범위에 관한 입법례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유형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예컨대 오스트리아, 영국 등에서와 같이 순수하게 의학적 소견에 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둘째는 예컨대 프랑스, 브라질, 노르웨이 등에서와 같이 순수하게 명문으로 책임능력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미국,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등의 입법례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책임능력의 확인과 함께 법원이 행위자에 대하여 어떤 개별적인 처우을 선택하는 것이 적당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도 감정인에게 구하는 것이다. 이 들 중 세 번째는 근대적 입법에서 많이 보이는 것이고 또 이미 형사절차의 단계에서 감정인에 대하여 법관과의 공동작업에 의한 형사치료적 사명의 실현을 촉구하고 있음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생물학적 요소와 심리학적 요소의 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나누면 두 가지 사고방식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심리학적 요소에 대해서 경험과학적으로 답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 내지 곤란하다든가 또는 원래 심리학적 요소는 자유의사의 문제(특히 제어능력에 관련하여)이므로 이 요소에 대해서는 규범적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즉 생물학적 요소가 존재하여도 심리학적 요소의 판단에 있어서 결국은 행위자에 대한 책임귀속이 가능한가, 행위자를 비난할 것인가라는 법률판단을 하는 것이고, 반대로 말한다면 행위자를 비난할 때에는 생물학적 요소인 정신장애의 유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리학적 요소에서는 규범적 판단을 표면화시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경험과학적으로 판단이 곤란하므로, 결국 판단자의 주관적 체험에 기하여 판단할 수 밖에는 없게 되고, 법관이 피고인과 같은 상태에 놓여졌다면 그와 같은 정신상태로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아야 하고 또 그것은 일반시민의 의식에 뿌리를 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정신장애가 심리학적 요소에 준 영향의 태양이나 정도는 경험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고 정신병리학적 법칙성에 입각한 설명은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심리학적 요소는 생물학적 요소의 중대성의 징표로 파악된다. 그런데 책임능력제도는 통상의 위법성인식이나 기대가능성과는 달리 형사책임연령제도처럼 정신장애를 이유로 하여 규범에 따를 능력이 없거나 감약한 경우를 특별유형으로 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생물학적 요소와 심리학적 요소를 전적으로 독립하여 취급할 것은 아니며, 생물학적 요소의 심리학적 요소에의 영향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여 책임능력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책임능력의 감정은 사법정신감정이라고도 하며, 그 역할은 범행시의 행위자 인격과 정신상태에 대한 학식경험상의 의견ㆍ진단을 법원에 제출하여 책임능력의 판단을 보조하는 것인데, 이를 둘러싸고 두 가지 쟁점이 있다. 하나는 정신감정신청의 채택 여부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감정결과의 채택 여부에 관계되는 것이다. 전자는 이를 전적으로 자유재량하에 둘 것인가, 아니면 책임능력의 유무, 정도에 관하여 「상당한 의심」, 또는 「근거 있는 의심」이 간다고 인정되는 범위내에서 필요에 따라 감정을 맡겨야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며, 후자는 정신감정의 법관에 대한 구속력 또는 자유심증주의의 합리적 억제를 둘러싼 문제이다. 이하에서 하나씩 살펴 보기로 한다.


III. 정신감정의 요부(要否)

  당사자가 책임능력의 존재 여부에 대하여 감정을 신청한 경우, 법원은 이를 반드시 채택하여 감정을 명하야 하는가, 혹은 법관의 자유재량에 의해 필요하지 않다고 인정될 때 당연히 그 신청을 기각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대한 외국의 법제는 다음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 진다. 첫째는 일정한 요건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전문가에게 감정을 구하는 것을 법관의 의무로 하는 것이고, 둘째는 전문가에게 감정을 구할지 여부를 전적으로 법관의 자유재량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 대해서 일정한 요건이 존재하는 경우에 전문가에게 감정을 구하는 것이 법률상 의무로 되어 있는 입법례로서는 미국에서는 매사츠셋츠를 비롯하여 미네소타, 오하이오, 뉴욕, 펜실베니아, 인디애나, 콜로라도, 택사스 등 각주에서는 특정의 법죄자 군에 대해서는 의학적 검사가 의무적이라고 하고, 또 피고인측으로부터 정신이상의 항변(insanity defence)이 제출된 경우, 또는 법원이 정신장애의 의심을 가지게 된 경우에는 의학적 검사가 요구된다. 특히 매사츠셋츠주에서는 브리그스법(Briggs Law)이 유명한데 이 법은 일정한 범죄에 대하여 반드시 감정을 명하게 되어 있다. 글뤽(S.Glueck)도 「정신이상의 항변에 관한 개혁안」이라고 하여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법은 모든 중요한 범죄 및 습관성 범죄를 범한 자에 대해서는 통상의 절차로서 재판전에 반드시 주정신보건국 소속 정신과의사의 평가와 진단을 받도록 되어 있다. 스위스형법 제13조는 예심판사 또는 판사가 피고인의 책임능력에 대해서 의심이 있을 때에는 1인 또는 수인이 감정인으로서 피고인의 정신상태를 검사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하고, 피고인이 농아자일 때 또는 피고인은 환자라는 취지의 주장이 있을 때에는 항상 검사를 행하여야 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형사소송법 제134조에 의하면 피의자의 정신건강이 문제되는 것과 같은 객관적 요인이 있는 것에 의해서 법원이 의심을 갖게 되었을 때에는 의학적 감정을 행하여야 할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도 대체로 마찬가지이다. 이들보다도 더 광범위한 것은 브라질형사소송법 제149조이다. 그에 의하면 법원이 피고인의 정신상태에 대하여 의심을 가졌을 때에는 직권으로 또는 검사ㆍ변호인후견인ㆍ피고인의 친족 등의 신청에 의하여 반드시 감정을 명하게 되어 있다.
  다음으로 전문가에게 감정을 구할지 여부를 전적으로 법관의 자유재량에 맡기고 있는 입법례로서 먼저 영국을 들 수 있는데, 그 당사자소송절차에서는 감정이 특히 방어수단으로 사용되지만, 그의 채택여부는 전적으로 법관의 자유재량에 맡겨져 있다. 법관은 스스로  피고인의 정신이상 여부를 쟁점으로 할 수 없고, 검사도 또한 자진하여 그 증거를 제출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피고인측의 신청에 맡겨져 있지만, 만일에 정신이상이 입증되면 무죄가 선고된 후 장기간 특수시설에 억류되게 되므로 피고인측의 신청도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스웨덴도 법제적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법관의 자유재량에 맡겨지고 있으나 실무의 운용에서는 영국과 사정을 달리하고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법원이 감정신청을 기각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탈리아 및 덴마크에서는 그 문제에 대하여 다툼이 있는 것 같다. 즉 이탈리아에서는 감정명령이 법원의 의무로 되어 있지 않고 파기원의 많은 판례는 법관은 책임능력의 문제를 직접적인 자기 자신의 관찰이나 개인적 지식에 의해서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감정을 구하는 것은 결코 의무는 아니며 그 판단을 위하여 감정 이외의 수단을 사용할 수 있  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피고인의 책임능력의 식별이 곤란한 경우 감정을 구하지 않은 것을 부당하다고 한 판례가 나타나기도 하였으며 이를 둘러싸고 법관의 자유심증을 제한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논쟁이 전개됨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덴마크형법 제17조는 피고인의 수형능력에 대해서 감정을 구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지만, 제16조(책임무능력)의 경우에 있어서도 감정명령이 행하여져야 할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고 실무의 운용면에 있어서는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광범위하게 감정이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169조(감정)에 “법원은 학식ㆍ경험있는 자에게 감정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판례에는 “심신장애자의 행위 여부의 판단은 반드시 전문지식을 가진 자의 감정에 의하여서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행위의 전후사정이나 목격자의 증언을 참작하여 심신장애자의 행위가 아니라고 인정하였다고 해서, 이를 위법이라 할 수 없다” 대판 1971.3.23, 71도212; 대판 1984.5.22, 84도545, “심신장애의 여부는 기록에 나타난 제반자료와 공판정에서 피고인의 태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도 무방하다.”

라고 판결한 것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판례에는 “피고인의 범행당시의 정신상태에 관하여는 전문의에 의한 의학상의 감정에 의하지 않으면 정신의 미약정도를 인정하기 곤란하다고 할 것이며,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타인의 증언에만 의하여 피고인의 범행당시의 정신상태가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미약하다고 인정함은 위법이다” 대판 1958.11.28, 4291刑上415.
라고 판결하는 등 서로 엇갈린 판례가 보인다. 어쨌든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의 판례는 감정의 요부를 법관의 자유재량에 의한다는 태도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감정을 실시하지 않고 책임능력을 판단한 것이 경험칙에 위반하는 한에서는 감정은 필요적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법원의 재량폭을 넓게 인정하고 감정의 실시에 소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증거평가에 관한 자유재량주의(형사소송법 제308조)를 강조하는 것이겠지만 그에 대한 합리적 억제가 필요할 것이다.   
 

IV. 정신감정의 채부(採否)

  다음에는 법관이 전문가의 감정결과인 피감정인의 범행시의 정신상태에 관한 기술적 의견에 구속되는가 여부에 대하여 생각하기로 한다.
  책임능력의 판단은 궁극적으로는 법률적 판단이고 그 전제가 되는 생물학적 요소 및 심리학적 요소에 대해서도 최후적 판단은 법원에 맡겨져 있다는데 대해서는 다툼이 없다. 정신감정도 증거방법의 하나에 지나지 않고 감정결과의 채부ㆍ증명력의 평가에 대해서도 자유심증주의가 타당하다고 한다(형사소송법 제308조). 그러나 여기에서 자유라는 것은 형식적인 법률적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에 그치고 법관의 자의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정신의학의 지식은 책임능력의 판단에 대하여 대단히 중요하고 또 법관에게는 정신의학의 지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기 위하여 정신감정이 행하여지는 것이므로 자유심증주의의 제약으로서 경험법칙ㆍ논리법칙의 위반에 대해서도 신중한 고려를 요한다.  만일 이와 같은 법칙을 무시하거나 오해하여 부당하게 감정결과를 배척한다면 합리적 자유심증의 한계를 넘어서 합리적 자유심증의 한계를 넘어서 경험칙에 위반하는 증거평가를 한 것이고 사실오인 내지 이유불비의 위법이 있게 될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이 경우를 절대적 항소이유로 하고 있고 또 형사소송법 제323조 2항은 “법률상 범죄의 성립을 조각하는 이유 또는 형의 가중, 감면의 이유되는 사실의 진술이 있는 때에는 이에 대한 판단을 명시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처럼 자유심증주의의 제약을 강조하면 소송현실상 법관의 감정인에 대한 의존경향이 증대하고 감정결과에 대한 법적 평가의 구속여부가 문제되는 것이다. 이에 관한 독일의 경향을 보면 현재 구속설이 지배적이고 그 경우 감정인과 법관 사이에 관례(Konverntion)가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법관의 지나친 감정인에 대한 의존경향이 비판되고 있다. 이에 관하여는 Kaufmannm Arthur, "Das Probleme der Abhanängigkeit vom medizinischen Sachverständiger, in: JZ 23, 1985, S.165~172(上田健二譯, “刑事裁判官の醫學鑑定人依存性の問題”, 刑法雜誌제27권3호. 日本刑法學會, 有斐閣, , 135면 이하).
 
 우리나라의 판례 대판 1994.5.13, 94도581, “형법 제10조 제1항 및 제2항 소정의 심신장애의 유무 및 정도의 판단은 법률적 판단으로서 반드시 전문감정인의 의견에 기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정신분열병의 종류 및 정도, 범행의 동기 및 원인, 범행의 경위 및 수단과 태양, 범행의 동기 및 원인, 범행의 경위 및 수단과 태양, 범행 후의 피고인의 행동, 증거인멸 및 공작의 유무, 범행 및 그 전후의 상황에 관한 기억의 유무 및 정도, 반성의 빛 유무, 수사 및 동판정에서의 방어 및 변호의 방법과 태도, 정신병발병 전의 피고인의 성격과 그 범죄와의 관련성 유무 및 정도 등을 종합하여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원심이 피고인은 편집형 정신분열증환자로서 심신상실상태에 있었다는 감정인의 의견을 배척하고 제반사정을 종합하여 심신미약만을 인정한 것은 적법하다.”
同旨: 대판 1976.8.24, 76도944; 대판 1990.11.27, 90도2210; 대판 1995.5.24, 94도3163.
와 통설은 대체로 불구속설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태도를 부당하다고 할 수 없으나 피고인의 행동을 이해하고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감정인의 전문적 지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해결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먼저 생물학적 요소에 관하여는 정신장애의 유무, 종류, 정도는 정신의학의 전문지식에 의해서만 대답될 수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인식은 자유심증주의도 과학적 경험법칙에 의해서 내재적으로 제약되고 있는 이상 당연히 감정의 평가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감정이 그 사용된 자료, 실시된 방법, 결론에 이르는 추론과정에서 정당하다면 생물학적 요소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단을 원칙적으로 구속한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법원이 감정인의 의견을 신뢰할 수 없을 때에는 원칙적으로 재감정을 명해야 한다. 또 감정의 자료나 추론과정에 오류가 있는 경우에도 감정인신문 등을 통하여 그 과오를 정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결론이 얻어질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감정을 명해야 한다. 요컨대 생물학적 소의 인정에 있어서는 법원은 감정의견의 정확성ㆍ신용성을 외부로부터 판단할 뿐이고 정신의학의 지식에 관계되는 범위에서는 감정인에 따라야 할 것이다.   
  한편 심리학적 요소에 대해서는 그것이 규범적 측면과 관계되는 이상 법관의 재량에 의한 판단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이에 대해서도 감정인은 의견을 진술할 수 있고, 또 심리학적 요소라도 사실적 측면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감정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의 구속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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